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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 따뜻한 수갑

 

따뜻한 수갑


고향으로 숨어든 한 여자 뒤에
한시도 미행을 멈추지 않던 두 그림자
묵은 골목길 끝 작은 사글셋방에다
서글픔을 풀었는데, 꾹꾹 눌러 담은 슬픔이
먼저 와 앉아 있었다
가난한 소리의 조각들이 어두운 방을 떠돌았고
차가운 방구들은 여자의 체온으로 견디려 했다
마음의 잡초를 뽑으며
꿈을 심던 고향의 낯선 거리
시린 바람을 껴안고 집으로 돌아가던
깊은 겨울밤, 감각을 잃은 손가락이
몇 번이나 유서를 쓰게 했다
두 발은 가위가 되어
과거를 잘라내며 걷고 있었지만
매일 지상에서 허락된 마지막 하루
그럴 때마다 이불 속에 숨어 있던
해맑은 웃음이 뛰어나와
엄마라며 손을 잡고 따뜻한 수갑을 채웠다
날마다 키가 자라던 두 그림자

-시인 손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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